"택배 분류작업 누가?"…'30년 전쟁'에도 해법은 '안갯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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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 분류작업 누가?"…'30년 전쟁'에도 해법은 '안갯속'
  • abc경제
  • 승인 2020.10.24 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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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오전 서울 서초구 CJ대한통운 택배물류현장에서 택배노동자들이 택배 분류 작업을 하고 있다. 2020.10.21/뉴스1 © News1 국회사진취재단

"분류작업은 도대체 누구 겁니까?"

현재 택배산업이 가장 시급하게 풀어야 할 과제는 이 한마디로 요약된다. 수년째 논란이 지속되고 있지만 결론이 나오지 않고 있다. 그만큼 풀기 쉽지 않은 문제라는 방증이다.

택배터미널에서 주소지별로 택배상자를 분류하는 일명 '까대기'로 불리는 택배상자 분류작업은 수년째 과로사 주범으로 지목됐다. 하지만 분류 작업이 택배회사와 택배기사 중 누구의 몫인지 명확하지 않다. 21대 국회에 택배종사자를 위한 '생활물류법'이 발의됐지만, 여기에도 분류작업에 대한 규정은 빠졌다.

택배 분류작업은 허브터미널(메인 거점)에서 서브터미널(지역별 거점)로 옮겨진 택배 덩어리를 운송장에 적힌 배송지역별로 구분해 차량에 싣는 작업을 뜻한다. 택배물량이 늘면 분류작업 업무강도와 시간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23일 한국통합물류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총 택배물량은 27억9000만개를 달성해 전년 대비 9.72% 증가했다. 택배업계는 올해 코로나19 특수로 물동량이 30% 증가한 36억개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한다.

택배산업은 1992년 국내에 첫 택배서비스가 등장한 이후 가파른 성장세를 그려왔다. 1998년 5975만개에 불과했던 연간 택배물량은 2000년 1억개, 2005년에는 5억개를 돌파하며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났다. 28년 만에 물동량이 3400% 폭증한 셈이다.

◇택배물량 28년 새 3400% 폭증…"공짜노동 더는 못한다"

매년 택배 물량이 급증하면서 산업 초창기에 일손을 도울 겸 거들었던 '분류작업'은 늘어나는 물동량의 무게만큼 버거운 '짐'이 됐다.

결국 2017년 출범한 택배노동조합이 분류작업을 공개적으로 거부하고 나섰지만, 돌아온 대답은 '애초 택배기사의 업무'라는 말이었다. 택배노조가 줄기차게 분류작업을 '공짜노동'이라고 주장하는 이유다.

분류작업의 책임 소재가 모호한 근본 원인은 택배종사자의 업무를 규정하는 법이 없어서다. 특수고용직인 택배기사에게 적용되는 관련법은 '화물자동차운수사업법'이 유일하다. 이마저도 택배기사에 적용되는 규정은 '화물운송사 자격'과 '자동차등록번호판' 관련 조항이 전부다.

2000년대 초반 1~2시간이면 끝났던 분류작업은 현재 5~6시간, 성수기에는 7시간까지 3배 이상 늘었다고 택배기사들은 항변한다. 노동단체 '일과건강'이 지난달 발표한 '택배노동자 과로사 실태조사'에 따르면 코로나19 이전보다 1인당 평균 분류작업이 35.8% 늘어 전체 노동시간의 42.8%를 차지했다.

반면 택배회사는 업계 관행과 판례를 근거로 분류작업은 택배종사자의 몫이라는 입장이다. 2011년 대법원은 "화물분류작업을 진행하는 것에 대해 묵시적 합의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CJ CLS(현 CJ대한통운)가 화물분류작업에 관련한 노무비 상당의 이득을 법률상 원인없이 취득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2017년 광주지방법원도 분류작업에 대해 "묵시적 합의가 있었던 것으로 본다"고 판시한 바 있다.

한 택배업계 관계자는 "묵시적 합의가 수십년간 업계 관행으로 내려왔다면 일종의 '관습법'으로서 존중해야 한다"라며 "택배기사에게 지급하는 건당 수수료에 이미 분류작업에 대한 대가가 포함돼 있다"고 말했다. 다른 업계 관계자도 "분류작업은 배송기사가 자기 화물을 골라 싣는 단계"라며 "배송과 분리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노동계는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한 택배노조 관계자는 "두 건의 판결은 택배사업자와 택배종사자 간에 묵시적인 합의가 있었다는 개별적 판단"이라며 "분류작업 책임이 택배종사자에게 있다는 것을 확인한 게 아니다"고 성토했다.

이어 "과거에는 물동량이 적었기 때문에 분류작업이 크게 부담이 되지 않았지만, 물량이 수십배 늘어난 지금은 생명의 위협을 느낄 수준"이라며 "단지 관행이라는 이유로 살인적인 업무량을 떠넘기는 것이 맞느냐"고 되물었다.

© News1 최수아 디자이너

◇'분류작업' 빠진 생활물류법…분류작업 해법 될까

택배사와 노조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지만 어느 한쪽 손을 들어주기 애매한 형국이다. 택배노동의 근로 환경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최고조에 달한 시점에도 분류작업 문제를 해소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유일한 해법은 '택배법'을 제정해 분류작업의 주체를 명확하게 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국회에 발의된 '생활물류서비스산업발전법안'(생활물류법)에도 이 내용은 빠져 있다.

주목할 점은 생활물류법에서 분류작업의 주체와 책임이 제외된 배경이다.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6월18일 생활물류법을 대표발의했다가 4개월 뒤인 10월8일 수정안을 재발의했다.

생활물류법 원안은 총칙 제2조에 택배서비스사업종사자를 '택배운전종사자'(택배기사)와 '택배분류종사자'(분류인력)로 구분하고 있다. 택배운전종사자는 집화·배송 업무에, 택배분류종사자는 화물의 분류 업무에 종사하는 자로 업무 범위를 명확히 했다.

하지만 수정안에는 이 부분이 통째로 삭제됐다. 이 밖에도 Δ택배운전종사자 자격요건 Δ산업재해 취약 영업점 위탁계약 해지 Δ택배서비스사업자 및 영업점의 지도·감독 의무도 원안에서 제외됐다.

의원실은 "원안이 발의된 후 택배업계의 반발이 있었다"며 "택배사업사와 택배종사자 어느 한쪽의 이해관계에 치우치지 않고, 법의 보편성을 보장할 수 있는 중재안을 다시 발의했다"고 설명했다.

의원실 관계자는 "택배기사 입장에서는 분류업무가 자신의 일이 아니라는 조항이 명문으로 정해지면 가장 좋았을 것"이라고 인정하면서도 "택배사마다 자동화 수준과 위탁계약 내용이 상이하고, 명문으로 분류업무 주체를 못 박으면 법과 현실이 괴리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생활물류법에 근거한 '표준계약서'로 분류와 배송 책임을 분리해서 위탁계약을 맺을 수 있도록 보장했다"며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향후 정책협의체에서 논의해 시행령으로 보완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노동계 일각에서는 "생활물류법이 '반쪽짜리 택배법'으로 전락했다"고 실망한다. 한 택배노조 관계자는 "숙원이었던 분류작업이 빠지면서 노동계의 기대감도 크게 낮아졌다"며 "생활물류법이 시행되더라도 지금보다 크게 나아지지 않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표준계약서로 분류작업과 배송작업을 구분할 수 있다고 해도, 을(乙)인 택배기사가 갑(甲)인 사업자가 내미는 계약 조건을 거부할 수 있겠냐"며 "처벌 조항도 없어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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