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스낵 내 자식 같다"던 신춘호 농심 회장, 92세 일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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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스낵 내 자식 같다"던 신춘호 농심 회장, 92세 일대기
  • abc경제
  • 승인 2021.03.27 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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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춘호 회장의 젊은 시절.© 뉴스1

신춘호 농심그룹 회장이 27일 오전 3시38분께 향년 92세로 별세했다. 그는 별세 직전까지 고령의 나이에도 직접 경영에 직접 참여해 라면과 스낵을 만들며 식품업계에 '살아있는 전설'로 불렸다.

◇롯데와 결별…'농심'으로 라면 사업 진출

신 회장은 롯데그룹 창업주인 고(故) 신격호 명예회장의 둘째 동생으로 국내에서 롯데을 이끈 인물이다. 하지만 1965년 말 라면 사업 탓에 신 명예회장과 갈등을 겪으며 롯데공업을 설립해 독립했다. 1978년에는 사명을 아예 농심으로 바꾸면서 롯데와 결별했다.

당시 신 회장은 라면 사업 전망을 밝게 봤다. 당시 범국가적인 혼분식(주식으로 잡곡·밀가루를 섞어 먹는 것) 장려운동이 한창인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1965년 라면 시장에 진출하며 "한국에서의 라면은 간편식인 일본과는 다른 주식이어야 한다"고 말한 일화도 유명하다. 값이 싸면서 우리 입맛에 맞고 영양도 충분한 대용식으로 라면을 만들겠다는 신회장의 의지가 담긴 것이다.

특히 신 회장은 회사 설립부터 연구개발 부서를 따로 두었다. 평소 '다른 것은 몰라도 연구개발 역량 경쟁에서 절대 뒤지지 말라'고 했다.

그의 도전은 계속됐다. 지난 1971년 새우깡 개발 당시에도 그야말로 '멘땅에 헤딩'이었다. 하지만 우리 손으로 개발한 기술을 지적재산을 남긴다는 일념으로 새우깡 개발에 성공했다. 농심이 새우깡 개발에 사용한 밀가루만 4.5톤 트럭 80여대 물량에 달한다.

농심 창업주 신춘호 회장이 향년 92세 나이로 별세했다. 농심에 따르면 27일 신 회장은 이날 오전3시38분 지병으로 서울대학병원에서 별세했다. 신 회장은 1965년 '롯데공업주식회사' 창립, 신라면·짜파게티·새우깡 등 국민의 사랑을 받는 제품을 개발했다. (농심 제공) 2021.3.27/뉴스1

◇신라면·짜파게티·너구리까지…히트작 메이커 신춘호 회장

신 회장은 라면 사업 진출 20여년만에 '브랜드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아무리 맛있는 라면이더라도 브랜드력이 없으면 인기는 금방 식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실제 지난 1970년 출시한 '짜장면'으로 실패의 맛을 봤다. 유명 조리장을 초빙해 요리법을 배우고 7개월간의 개발 기간을 거쳐 내놓은 국내 최초 짜장라면 짜장면은 출시 초기 소위 '대박'이 났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비슷한 이름으로 급조된 미투 제품의 낮은 품질에 불만을 느낀 소비자들은 짜장라면 전체를 외면했다. 결국 농심의 짜장면도 사라지게 됐다.

결국 신 회장은 제품의 품질도 중요하지만, 모방할 수 없는 브랜드로 '확실한 차별화 전략'이 중요성을 깨달았다.

이후 신 회장은 다양한 히트작을 냈다. 1975년에는 '농심라면'(1975년)을 성공시켰다. 특히 1978년 농심으로 사명을 바꾸면서 라면사업이 본격화 됐다.

이 밖에 56년간 '신라면'(1986년), '짜파게티'(1984년) 등 다수의 인기 라면도 신 회장의 손을 거쳐 탄생했다. 특히 신 회장의 성을 딴 라면으로 '신라면'은 그를 상징하는 라면이다. 농심이 수십 년간 라면업계 1위를 수성하는데 절대적인 기여를 했다.

실제 신라면과 짜파게티의 라면 시장 점유율은 국내 1~ 2위를 달린다. 다수의 히트작의 인기에 힘입어 농심은 1985년부터 36년 동안 라면 사업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너구리 한 마리 몰고 가세요' 라는 광고 문구도 신 회장 작품이다. 그는 너구리의 제품명부터 라면 포장 디자인·광고 문구까지 직접 챙겼다.

신 회장의 마지막 작품은 '옥수수깡'이다. 이미 원재료를 강조한 새우깡·감자깡·고구마깡 등이 있었으니 옥수수깡을 만드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지난해 10월 출시된 그의 마지막 작품 옥수수깡도 좋은 반응을 얻었다. '품절 대란'을 일으킬 만큼 화제가 됐다.

신춘호 농심 회장의 젊은 시절.© 뉴스1

◇라면·스낵 "다 내 자식 같아"…신춘호 회장의 끊임없는 도전

지난 1990년대 해외 수출 본격화에 앞서 신 회장은 농심 브랜드를 그대로 해외로 가지고 가자며 "얼큰한 맛을 순화시키지도 말고 포장디자인도 바꾸지 말자"고 한 것도 유명한 일화다.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임을 강조하며 현지화 대신 한국적인 색깔을 지키는 과감한 결단을 내린 것이다. 현재 농심은 세계 100여개국에 농심이 만든 라면을 공급하고 있다. 그 결과 지난해 사상 최대인 9억9000만불(약 1조 1200억원)의 해외 매출을 기록했다.

새로운 것에 대한 신 회장의 갈증은 멈추지 않았다. 신 회장의 끊임없는 도전 정신에 농심은 지난 2011년 또 다시 과감한 결정을 내렸다.

기존 신라면에 '프리미엄'을 덧붙인 신라면 블랙을 출시한 것이다. 신라면 블랙은 출시 초기 규제와 생산중단의 역경을 겪었지만 결국 지난해 뉴욕타임즈가 꼽은 '세계 최고의 라면 1위'에 올랐다.

생전 신 회장은 자신의 자서전 '철학을 가진 쟁이는 행복하다'를 통해 "라면·스낵은 다 자식 같다"고 강조했다. 농심이란 회사와 라면·스낵에 대한 그의 애정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실제 우리 국민들이 배가 고파 고통받던 시절, 신 회장이 이끌던 농심의 라면사업이 국가적인 과제 해결에 힘을 보탰다. 산업화 과정의 대열에서 우리 농심도 정말 숨가쁘게 달려왔다. 신 회장이 일군 농심은 이제는 세계시장을 무대로 우리의 발걸음을 다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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